FINANCE INBODY / 기업의 첫 장면

LED 손목시계와 작은 칩, 현대 반도체 공장을 배치한 삼성 반도체 성장사 대표 이미지

<손목시계용 칩에서 시작한 삼성 반도체 이야기. 이해를 돕는 개념 삽화이며 특정 제품·공장의 실제 사진이 아닙니다.>

삼성전자 반도체의 시작은 손목시계였다? 1974년 한국반도체 인수부터 D램 1위까지

작은 칩에서 시작된 큰 이야기

만약 타임머신을 타고 1975년으로 돌아가 삼성전자 직원에게 이렇게 말한다면 어떨까요?

“지금 만들고 있는 그 손목시계용 칩이요. 훗날 세계적인 메모리 기업으로 성장하는 이야기의 첫 장면이 됩니다.”

아마 쉽게 믿기 어려웠을 겁니다.

더 궁금한 건 시작한 시점입니다. 기름값이 뛰고 기업의 비용 부담이 커지던 때, 삼성은 왜 반도체 쪽으로 발을 옮겼을까요?

2026년 5월 6일 로이터 보도에는 삼성전자 보통주의 장중 시가총액 [1]이 1,500조원, 약 1조300억달러에 도달했다는 기록이 등장합니다. 그날의 장중 기록입니다.

출처 · Reuters, 2026-05-06 원문 보기 ↗

그런데 삼성전자 반도체 공식 연혁에 등장하는 첫 양산 [2] 제품은 AI 칩도, 스마트폰 칩도 아닌 LED 손목시계용 IC [3]였습니다.

잠깐, 이 질문
도대체 손목 위의 작은 전자시계와 세계적인 메모리 기업 사이에는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요?

이 이야기는 세 개의 연도만 기억하면 쉽습니다.

이 이야기의 세 번의 전환점

1974
사업의 문을 열다
한국반도체 인수

1975
첫 제품을 양산하다
LED 손목시계용 IC

1983
메모리로 무대를 넓히다
64Kb D램 개발

그런데 연도만 따라가면 가장 재미있는 질문이 빠집니다. 왜 그 시기에 그런 선택을 했을까요? 답을 찾으려면 회사 바깥의 경제와 회사 안의 고민을 함께 봐야 합니다.


01 / 시작의 조건🔎 기름값이 뛰는데, 왜 반도체를 시작했을까?

1974년의 결정을 이해하려면 그 직전 세상이 얼마나 시끄러웠는지부터 봐야 합니다.

지금의 삼성전자를 떠올리면 거대한 공장과 최첨단 장비부터 생각나죠. 하지만 당시의 기업이 마주한 질문은 훨씬 현실적이었습니다. 만드는 데 드는 돈은 늘어나는데, 이대로 물건을 팔아 계속 성장할 수 있을까?

그 질문 뒤에는 제1차 오일쇼크 [4]가 있었습니다.

1973년 가을 중동에서 시작된 석유 공급 충격으로 국제 유가가 급등했습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의 역사 자료에 따르면 원유 가격은 당시 배럴당 2.90달러에서 1974년 1월 11.65달러로 뛰었습니다.

대략 네 배입니다. 석유 가격 상승은 물가를 밀어 올리면서 성장에는 부담을 주었습니다.

출처 · 연준 역사 자료: 1973~1974년 오일쇼크 원문 보기 ↗

기름값이 오른다고 하면 우리는 우선 자동차 주유비부터 떠올립니다. 공장 입장에서는 이야기가 더 복잡해집니다.

물건을 만드는 데 에너지가 들고, 재료를 옮기는 데도 돈이 듭니다. 물류비와 원가가 오르면 예전과 같은 가격에 같은 수량을 팔아도 남는 돈이 줄어들 수 있습니다.

동네 빵집으로 생각하면 쉽습니다. 밀가루를 들여오는 비용도, 오븐을 돌리는 비용도 올라갑니다.

그렇다고 빵값을 한꺼번에 크게 올리자니 손님이 줄까 걱정됩니다. 장사는 계속하는데 통장에 남는 돈은 기대보다 적어지는 상황입니다. 이런 비유로 원가 충격이 무엇인지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기업에는 ‘얼마나 많이 파느냐’와 함께 ‘한 개를 팔아 얼마나 가치를 남기느냐’가 중요해집니다. 더 많이 일하는 것만으로 해결되지 않는 문제가 생기는 겁니다.

한국도 이 충격을 피하지 못했습니다. 한국은행은 당시 국내 상황을 물가 상승, 경기 부진, 국제수지 악화가 함께 나타난 시기로 설명합니다.

물가를 잡으려 돈줄을 조이면 기업이 더 힘들어질 수 있고, 경기를 살리려 돈을 풀면 물가가 불안해질 수 있었습니다. 흔히 말하는 스태그플레이션 [5]의 어려움입니다.

출처 · 한국은행: 1972~1979년 경제 안정화 노력 원문 보기 ↗

여기에 한국의 산업화라는 또 다른 흐름이 겹쳤습니다. 한국은행 자료에는 1974년 중화학공업 육성을 위한 금융지원도 기록되어 있습니다.

나라 전체가 산업 기반을 키우는 가운데, 당장의 경기 충격을 수습해야 했던 시기였던 셈입니다. 이는 당시 한국의 산업 환경을 보여주는 기록입니다.

출처 · 한국은행의 같은 시기 기록 원문 보기 ↗

이 배경을 알고 나면 1974년이라는 숫자가 다르게 보입니다. 아무 걱정 없이 새 사업을 하나 더 붙이기 좋은 시기라기보다는, 앞으로 무엇으로 경쟁할지를 더 절실하게 고민하게 되는 환경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삼성이 찾은 답은 무엇이었을까요?

석유, 공장과 운송, 생활용품을 함께 보여주는 오일쇼크 개념 삽화

<에너지 가격 충격은 생산·운송 비용과 생활물가에 부담을 줄 수 있습니다. 당시 환경을 설명하는 개념 삽화입니다.>

02 / 시작의 조건제품을 잘 조립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했을까?

삼성의 공식 회고는 당시 오일쇼크에 따른 경영난과 고부가가치 산업 진출 필요성을 연결해 설명합니다. 또 전자사업을 위해 핵심 부품인 반도체를 스스로 공급할 필요가 있었다고 기록합니다. 여기서 드러나는 문제의식은 기술로 더 많은 가치를 만들고, 중요한 부품을 직접 확보하자는 것이었습니다.

출처 · 삼성 반도체사업 공식 회고 원문 보기 ↗

가령 내가 전자제품을 파는 회사라고 생각해 보세요. 겉모양을 더 예쁘게 만들고 조립을 빠르게 하는 능력도 중요합니다. 그런데 핵심 부품의 성능과 공급 조건을 다른 회사가 정한다면, 내가 바꾸고 싶은 제품을 내 뜻대로 만들 수 있는 범위에는 한계가 생길 수 있습니다.

식당을 열었는데 손님이 가장 좋아하는 소스는 모두 다른 가게에서 사 와야 하는 상황과 닮았습니다. 소스를 직접 만들 수 있게 되면 맛을 바꾸거나 새 메뉴를 개발할 여지가 커지겠죠. 반대로 주방 설비와 기술, 실패 비용도 직접 떠안아야 합니다.

반도체 자급 역시 ‘남에게 주던 돈을 아끼면 끝’인 선택은 아닙니다. 부품을 구매하는 능력과 부품을 제조하는 능력은 다릅니다. 새 기술을 익히고 생산 품질을 맞추려면 시간과 비용이 필요합니다. 자립의 기회와 새로운 부담을 함께 얻는 선택입니다.

그리고 한 가지는 구분해 둘 필요가 있습니다. 당시 경기가 어려웠다는 것은 경제 기록이고, 그 어려움을 사업 전환의 배경으로 설명하는 것은 삼성의 후대 회고입니다.

두 자료가 맞닿아 있다고 해서 모든 동기를 하나로 압축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오일쇼크가 있었고, 삼성은 핵심 부품과 고부가가치 기술을 고민했다’는 연결은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보면 한국반도체 인수는 훗날의 세계 1위를 미리 사 놓은 사건이라기보다, 전자사업의 안쪽으로 한 걸음 더 들어가려는 출발로 읽힙니다. 완제품을 만드는 회사가 그 제품 속 기술까지 자신의 과제로 받아들인 겁니다.

03 / 시작의 조건1974년, 회사를 샀으니 이제 반도체 강자일까?

1974년, 삼성전자는 한국반도체를 인수합니다. 삼성 반도체 역사의 공식적인 출발점입니다.

그렇다면 이때부터 삼성전자가 메모리 강자였을까요?

물론 아닙니다.

축구단을 인수했다고 다음 날 바로 리그 우승팀이 되는 것은 아니니까요. 운동장은 생겼지만 선수와 전술, 훈련 경험은 이제부터 쌓아야 합니다.

반도체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회사를 인수한 것은 경기장에 들어갈 입장권을 얻은 것에 가까웠습니다. 실제 제품을 만들고 생산 경험을 쌓는 일은 그다음 문제였습니다.

그래서 1974년은 ‘완성’이 아니라 출발로 봐야 합니다.

출처 · 삼성전자 반도체 공식 연혁 원문 보기 ↗

04 / 시작의 조건첫 양산 제품이 손목시계용 칩이었다고?

이듬해인 1975년, 삼성전자는 LED 손목시계용 IC 양산을 시작합니다.

요즘 반도체 뉴스에 익숙한 사람에게는 조금 소박하게 들릴 수 있습니다.

“겨우 손목시계용 칩?”

하지만 여기서 중요한 단어는 손목시계가 아니라 양산입니다.

연구실에서 칩 한 개를 작동시키는 것과 공장에서 같은 품질의 칩을 계속 만들어 판매하는 것은 완전히 다른 일입니다. 집에서 김밥 한 줄을 예쁘게 만드는 것과 매일 아침 김밥 1,000줄을 같은 맛과 크기로 내놓는 차이라고 생각하면 쉽습니다.

작은 손목시계용 칩이었지만, 공식 연혁상 삼성의 반도체 사업은 이때 실제 제품의 반복 생산 단계로 들어섰습니다.

거대한 반도체 사업의 첫 장면이 사람들의 손목 위에서 시작된 셈입니다.

출처 · 삼성전자 반도체 공식 연혁 원문 보기 ↗

05 / 더 큰 도전불황인데, 사람들의 책상 위에서는 무슨 일이?

1980년대 초 미국 경제는 심한 경기 침체를 겪었습니다. 물가를 잡기 위한 강한 통화 긴축이 배경이었고, 연준 역사 자료가 기록하는 침체 기간은 1981년 7월부터 1982년 11월까지입니다. 따라서 1983년을 설명할 때는 심각한 침체를 막 지나 회복으로 옮겨 가던 시점이라는 구분이 필요합니다.

출처 · 연준 역사 자료: 1981~1982년 침체 원문 보기 ↗

금리가 높아지면 돈을 빌려 새 공장을 짓거나 장비를 사는 선택이 부담스러워집니다. 소비자도 큰 지출을 망설일 수 있습니다. 가게 입장에서는 손님의 지갑이 조심스러워지는데, 새 매장을 여는 비용까지 부담이 되는 셈입니다.

그런데 바로 그 무렵 컴퓨터 시장에는 눈여겨볼 변화가 있었습니다. IBM은 1981년 IBM PC를 내놓았습니다. IBM의 기록은 이 제품과 호환 기기의 확산이 개인용 컴퓨터 시장을 넓힌 흐름을 설명합니다.

출처 · IBM: 개인용 컴퓨터의 역사 원문 보기 ↗

경제 뉴스만 보면 소비와 투자가 위축되는 장면이 보이는데, 기술 뉴스에서는 새로운 제품의 쓰임새가 커지는 장면이 보이는 겁니다. 둘은 모순이 아닙니다. 전체 경기가 어려워도 어떤 기술은 새로운 고객을 만날 수 있습니다.

다만 여기서 곧바로 ‘그러니 반도체를 만들면 누구나 성공했겠네’라고 넘어가면 중요한 부분을 놓칩니다. 컴퓨터가 늘어나는 것과 특정 회사의 칩이 팔리는 것 사이에는 기술, 가격, 공급 능력이라는 여러 문이 있습니다. 시장이 열리는 것과 그 문을 통과하는 것은 다른 일입니다.

이를 운동장 밖의 풍경과 경기장 안의 실력으로 나눠 생각해 보세요. 축구가 인기를 얻어 관중이 많아진다고 모든 구단이 우승하지는 않습니다. 관심이 커진 만큼 경쟁도 더 치열해질 수 있습니다.

PC의 등장 역시 ‘왜 메모리가 중요한 사업으로 보일 수 있었는가’를 이해하는 산업 배경입니다. IBM의 발표 하나가 삼성의 결정을 직접 일으켰다고 단정하는 근거는 아닙니다.

그 차이를 지키면서도 충분히 흥미로운 질문을 던질 수 있습니다. 컴퓨터가 더 많은 사람의 책상에 놓이면, 그 안에서 반복해서 필요한 부품은 무엇일까?

06 / 더 큰 도전한국 경기가 회복되면 공장 지을 돈도 쉬워질까?

같은 시기 한국은 제2차 오일쇼크와 국내 정치적 충격 이후의 어려움에서 벗어나려 하고 있었습니다. 한국은행은 경기회복과 물가안정을 함께 추구했고, 회복 움직임이 나타나자 1983년부터 통화 증가를 억제하는 등 긴축 조치를 취했다고 설명합니다.

출처 · 한국은행: 1980~1989년 안정성장 정책 원문 보기 ↗

여기에서 ‘회복’이라는 단어를 너무 편하게 읽으면 안 됩니다. 경기가 좋아지는 방향으로 움직인다는 말과 기업이 필요한 자금을 얼마든지 싸게 구할 수 있다는 말은 같지 않습니다. 정책 당국에는 다시 물가가 들썩이지 않도록 관리해야 할 이유도 있었습니다.

개인 생활로 바꾸면 아팠던 몸이 회복되기 시작했다고 바로 밤을 새워 일할 수 있는 것은 아닌 것과 비슷합니다. 체력이 돌아오는 흐름과 지금 감당할 수 있는 부담은 따로 살펴야 합니다.

이런 환경에서 큰 설비가 필요한 사업을 시작한다면 고민은 두 갈래로 나뉩니다. 지금 돈을 얼마나 넣어야 하는가, 그리고 그 돈이 매출로 돌아오기까지 얼마나 기다려야 하는가입니다. 기술을 완성해도 공장이 준비되지 않으면 팔기 어렵고, 공장이 준비되어도 제품이 고객의 조건을 충족하지 못하면 수익은 늦어집니다.

설비투자 사업에서는 이렇게 시간과 자금이 함께 숙제가 됩니다.

세계에서는 컴퓨터라는 새로운 수요의 흐름이 나타나고, 한국에서는 경기회복과 안정화가 함께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여기에 삼성은 ‘우리가 그 안에서 어떤 부품을 만들 것인가’라는 선택을 해야 했습니다. 1983년의 전환점은 그 여러 흐름이 만나는 장면으로 봐야 더 선명해집니다.